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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35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9)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흔쾌히 자리를 건넨 관리인은 무료한 일요일 오후를 쫓아버리기라도 하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습니다. 관리인에 따르면, 쁘땀부란 묘지는 자카르타시(DKI)에서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공동 시설입니다. 현재 약 1만4000여 구의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 비무슬림(non-Muslim) 신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습니다. 관리인은 쁘땀부란 묘지가 5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중 4개 구역은 유료로 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고 합니다. 3년 뒤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3년간은 추가로 무덤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다른 장소로 무덤을 옮긴다.. 2017. 9. 23.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8)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하지만 꼬박 7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낸 뒤 마주한 묘지는 예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묘지 여기저기에서 낙서가 발견됐고, 파손 및 변색의 자국도 역력했다. 주변 역시 빈 병과 과자봉지,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가득 했습니다. 현충원과 같은 풍경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거의 방치돼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묘지들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심지어 무덤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연을 날리며 왁자지껄 떠드는 현지인들도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마치 주말을 맞아 놀러 나온 가족, 친구들 같았습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부족한 때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동 묘지를 일상의 공간으로 받아.. 2017. 9. 22.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7)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허영은 일본의 패망 직전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들의 목숨을 구해 줍니다. 이를 계기로 전후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리고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 산업의 초석을 쌓는데도 힘을 보탭니다. 물론 국군으로의 뒤늦은 개과천선(?)과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의 칭송이 군국주의 영화를 생산한 친일 전범의 오명을 씻어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허영, 히나츠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2017. 9. 21.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6)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허영'(일제강점기의 영화감독, 1908∼1952, 1941년 내선일체를 홍보하는 문예봉 주연의 를 연출,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냄. 일본 육군 및 조선 총독부 후원을 받아 친일영화제작)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조선인 영화감독입니다. 연합군의 포로 학대에 대한 연합군의 비판이 강해지자, 일제 당국은 포로를 잘 대하고 있다는 선전 영화를 만들게 되고 이것을 제작한 것이 허영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들어갔습니다. 인도네시아인은 허 감독을 매우 잘 압니다. 인도네시아의 국립 시네마 테크에 가면 허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립을 도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허영 감독의 작품.. 2017.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