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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주저리/사회 문화93

일본 속 고려마을을 찾아서(8)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려향', 도쿄 신오쿠보 '고려박물관'을 가다 이는 '속일본기'의 "고구려인 1,799명을 오늘의 관동지방인 무사시노 지방에 이주시키고, 이곳에 고구려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인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하면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직물산업을 일으킨 약광왕에 대한 백성들의 신임은 두터웠다. 그가 죽자 백성들은 그를 고마군의 수호신으로 받들면서 영혼을 기렸고, 이는 고마신사의 창건으로 이어졌다.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이윤옥, 김영조 지음)'에 따르면, 고마신사에서는 26대까지 고구려인 자손들끼리만 혼인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 고려씨 자손이 대대로 궁사(宮司, 신사의 최고 신관 지위)를 맡아올 만큼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친한파’ 신사이다. 2022. 10. 28.
일본 속 고려마을을 찾아서(7)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려향', 도쿄 신오쿠보 '고려박물관'을 가다 입구의 안내문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고마신사는 고구려의 왕족이었던 약광왕(若光王)을 모신 신사이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668년 수도 평양이 함락되며 나라를 잃은 고구려인들은 대거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새로운 국가체계를 모색하고 있었던 일본에 있어 선진 문물과 기술을 보유한 이들은 귀중한 존재였다. '일본서기'에서는 보장왕의 막내아들인 약광왕이 이에 앞서 666년 10월경 일본으로 넘어 갔다고 밝히고 있다. 야마토 조정이 외국의 왕족 출신에게 수여했던 '왕(王)'의 호칭을 받은 약광왕은 한동안 일본 조정의 관료로 종사했다. 이후 716년 관동 7개국에 살던 고구려인들이 무사시노(武藏野) 지방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고마군이 설.. 2022. 10. 26.
일본 속 고려마을을 찾아서(6)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려향', 도쿄 신오쿠보 '고려박물관'을 가다 동네이름과 역이름은 물론 가게이름, 강이름까지 고마란 말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고려마을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본 속의 한국 문화재(이경재 지음)'에 의하면, 고려마을에서는 심지어 '너 또는 당신'을 뜻하는 '여보야' 단어를 사투리고 사용한다고 한다. 1300여년 전 이 곳에 도래한 고구려인들의 '여보'라는 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고마가와를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고마신사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장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이름의 장승 두 개, 도리이(鳥居, 신사 입구에서 주로 발견되는 일본의 전통 문)를 지나치자 이윽고 고마신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2022. 10. 24.
일본 속 고려마을을 찾아서(5)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려향', 도쿄 신오쿠보 '고려박물관'을 가다 도로변으로 들어선 채소밭, 차밭과 농가들을 지나치면서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제 몸 속에 고구려 조상들의 피가 흐르기 때문인가 생각해 봤다. 방문객들이 혹시나 길을 잃을까 봐 세심하게 마련해 놓은 표지판을 하나 둘씩 세어가다 보니 흥미로운 푯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밭 한가운데 '고마가와부동산(高麗川不動産)'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물줄기인 고마가와(高麗川)를 쫓아 이름을 지은 부동산 광고였다. 2022.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