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아직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전 국민의 당 상임 공동대표는 의사 출신입니다. 이후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뒤 학계를 거쳐 지난 2012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차기 대선후보로서 선호도는 차지하고라도 다양한 분야를 거치면서 의미 있는 경력을 쌓아온 점에는 주목할만 한 것 같습니다.
이는 비단 안 전 대표 뿐만이 아닙니다. '동료 의식'으로 남편을 내조한다는 평가를 받는 부인 김미경씨 역시 '멀티 이력'을 자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사에 몸담았던 2008년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법률가의 길을 선택한 김미경씨를 인터뷰했던 기사를 공유해 봅니다^^
<기사 및 사진 출처: 매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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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장 부인 김미경씨, 의사 가운 벗고 법률가 선택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따른다는 뜻의 한자성어 '부창부수(夫唱婦隨)'
부창부수란 말이 이들만큼 잘 어울리는 부부도 없을 것이다.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남편을 따라 부인도 40세 나이에 법률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의 부인 김미경씨(45).
어렸을 때부터 의사를 동경해온 김 씨는 의대 졸업 후 15년간 병리 전문의로 근무하며 꿈을 펼쳐왔다. 하지만 의학 외 분야에서 균형감 있고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진 못한 자신의 모습에 언젠가부터 허전함이 들었다.
특히 의료행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이에 따라 의사의 사회적 책임도 커지면서 폭넓은 시야를 갖춰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기에는 IT(정보통신) 업계로 김 씨보다 먼저 외도(?)를 한 남편 안철수씨 조언도 큰 역할을 했다. 김 씨는 "현대 사회에서는 한 분야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남편 의견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결국 김 씨는 2002년 성균관대학교와 삼성서울병원의 병리학 부교수직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법적, 사회적 관점에서 포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훈련을 받기 위해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주립대 법대에 입학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외국에서 생소한 분야를 공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 복습하고 다음 수업에 필요한 예습을 하다 보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김 씨 스스로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다. 하지만 기술적 용어들로 가득찬 전문 기사를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배운다는 기쁨은 커져갔다.
방학 때는 미국 연방법원에서 서기 생활을 하며 사법체계도 체험한 김 씨는 2005년 스탠포드대 법대의 생명과학 연구과정에 진학했다. 생명과학기술 관련 법, 윤리, 정책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의료법 전문가라는 제2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 김 씨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규정, 미국 식약청 약품 안전성 관리 연구 프로젝트 등을 주도하며 법과 의학의 '컨버전스(convergence)'에 팔을 겉어붙였다. 이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두 곳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한편 2006년에는 스탠포드 의대로부터 조교수 겸직 발령도 받았다. 의학경험과 법률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서 자신감 만큼이나 김 씨의 포부는 당찼다.
"의료기관들이 안전하고 윤리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종 위험요소를 관리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한국에 도입하고 싶습니다. 또 생명과학 분야 발견의 지적재산권 관리 및 라이센싱을 통해 실용화를 촉진함으로써 더욱 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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