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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4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7)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묘지 여기저기에서 낙서가 발견됐고, 파손 및 변색의 자국도 역력했다. 서울의 현충원과 같은 광경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거의 방치돼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묘지들의 상황도 엇비슷했다. 심지어 무덤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연을 날리며 왁자지껄 떠드는 현지인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마치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 및 친구들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동 묘지를 일상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허영의 묘지도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쓰레기를 한편으로 치우고 허영의 출생과 사망 시점을 알려 주는 묘지를 카메라에 담은 뒤 자세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관리인 사무실로 발걸음을 뗐다. 2018. 9. 4.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5)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친일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허영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정책인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영화를 제작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허영, 히나츠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실제 허영의 서로 다른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이 1997년 김재범 감독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그 호기심은 결국 쁘땀부란 공동묘지로 필자의 발길을 이끌었다. 2018. 8. 31.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3)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광복절을 즈음해 친일 매국노와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라는 양극단의 삶을 산 뒤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허영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해 보려고 한다. 허영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것은 예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였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일본군이 점령했던 인도차이나 반도 등으로 반강제로 동원됐던 조선인 학도병과 포로 감시원 등의 사연을 찾던 중이었다. 당시 웹사이트에 게재됐던 인도네시아 내 조선인 흔적 관련 정보 중 허영의 묘지가 가장 눈길을 사로 잡았다.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일본, 중국 등지가 아닌 적도에 인접한 동남아의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발자취는 호기심마저 자극했다. 그리고 현지인 친구의 도움으로 허영의 유해가 안장된 자카르타 시.. 2018. 8. 27.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2)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동남아 해양부를 대표하는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경제력(GDP 기준)의 약 40%를 차지하는 맹주이자 전세계에서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에 오는 18일부터는 56년만의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1966년에 영사 관계를, 1973년에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공식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선 1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한 뒤 한국에 관한 최초의 서양 기행문으로 손꼽히는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의 배가 처음 닻을 올렸던 곳이 바타비아(Batavia), 즉 지금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였다. 이어 300여 년 후에.. 2018.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