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닥터후융3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5)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친일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허영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정책인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영화를 제작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허영, 히나츠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실제 허영의 서로 다른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이 1997년 김재범 감독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그 호기심은 결국 쁘땀부란 공동묘지로 필자의 발길을 이끌었다. 2018. 8. 31.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4)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조선 총독부 등의 후원으로 친일 영화를 만들던 허영은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직전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들의 목숨을 구해 줬다. 이를 계기로 전후 일본식 이름인 히나츠 에이타로(日夏英太郞)를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 이후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 등을 제작하며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초석을 쌓는데도 힘을 보탰다. 물론 뒤늦은 개과천선(?)과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의 칭송이 군국주의 영화를 생산한 친일 전범의 오명을 씻어주기는 어렵다. 2018. 8. 29.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2)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동남아 해양부를 대표하는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경제력(GDP 기준)의 약 40%를 차지하는 맹주이자 전세계에서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에 오는 18일부터는 56년만의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1966년에 영사 관계를, 1973년에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공식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선 1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한 뒤 한국에 관한 최초의 서양 기행문으로 손꼽히는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의 배가 처음 닻을 올렸던 곳이 바타비아(Batavia), 즉 지금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였다. 이어 300여 년 후에.. 2018.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