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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9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9)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쁘땀부란 묘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이어 허영의 무덤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다. 관리인은 허영이 40여년 전인 1972년 2월 24일 5,322번째로 이곳에 묻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허영의 묘지는 4개의 유료 구역 중 가장 비싼 곳에 위치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허영의 무덤 위로 나란히 들어선 묘지는 허영과 관계 깊은 네델란드인을 추모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한·인니 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실제로는 허영과 결혼한 인도네시아 여성의 모친 즉, 허영의 장모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된다.) 허영이 독립 인도네시아를 갈망했던 영화 감독이었다는 점, 인도네시아가 1949년 12월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을 성취했던 점 등이 오버랩 됐다. 그리고 자유를 되찾은 인도네시아에서 .. 2018. 9. 8.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8)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흔쾌히 자리를 건넨 관리인은 무료한 주말 오후를 쫓아버리기라도 하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관리인에 따르면, 쁘땀부란 묘지는 자카르타시에서 연중 무휴로 운영하는 공동시설이다. 약 1만 4,000여 구의 기독교와 힌두교, 불교 등 비무슬림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고 한다. 관리인은 쁘땀부란 묘지가 5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고 밝혔다. 이중 4개 구역은 유료로 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 3년 뒤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3년간은 추가로 무덤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다른 장소로 무덤을 옮긴다고 관리인은 덧붙였다. 나머지 한 개 구역에는 28명의 인도네시아 국가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고 전했다. 2018. 9. 6.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7)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묘지 여기저기에서 낙서가 발견됐고, 파손 및 변색의 자국도 역력했다. 서울의 현충원과 같은 광경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거의 방치돼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묘지들의 상황도 엇비슷했다. 심지어 무덤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연을 날리며 왁자지껄 떠드는 현지인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마치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 및 친구들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동 묘지를 일상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허영의 묘지도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쓰레기를 한편으로 치우고 허영의 출생과 사망 시점을 알려 주는 묘지를 카메라에 담은 뒤 자세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관리인 사무실로 발걸음을 뗐다. 2018. 9. 4.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6)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자카르타 시내의 쁘땀부란(Petamburan) 묘지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허영에 관한 단어는 바로 감독(direktur)이었다. 묘지 관리인은 "허영이 영화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친구를 통해 필자에게 물어왔다. 독립 영웅으로 대접받는 허영의 묘지를 찾는 방문객들이 종종 있는 덕분인지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출입구를 지나 허영이 묻힌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아이들이 묘지 옆 공터에서 축구공을 차는 다소 생소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2~3분쯤 걸었을까. 마침내 'DR.HUYUNG' 이름이 새겨진 허영의 무덤이 눈앞에 나타났다. 꼬박 7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마주한 묘지는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2018.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