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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5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10)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허영의 인도네시아 생활이나 활동 등을 보여 주는 추가 자료를 수소문하기에는 일정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찜통 더위에 비 오듯 흘러내린 땀방울만큼이나 값진 시간임에는 분명했다. 전공 학자도 역사가도 아니지만, 타향에서 세상을 떠난 조선인의 흔적을 부족하게나마 둘러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친일 행적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지만 머나먼 이국 땅에서 독립 영웅으로 추앙 받는 허영의 존재는 한 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최근의 한류 열풍 등을 제외하면 역사, 문화 분야 교류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던 인도네시아와 관계를 감안할 때 그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허영 묘지를 출발점으로 동남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국 역사의 발자취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고.. 2018. 9. 10.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6)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허영'(일제강점기의 영화감독, 1908∼1952, 1941년 내선일체를 홍보하는 문예봉 주연의 를 연출,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냄. 일본 육군 및 조선 총독부 후원을 받아 친일영화제작)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조선인 영화감독입니다. 연합군의 포로 학대에 대한 연합군의 비판이 강해지자, 일제 당국은 포로를 잘 대하고 있다는 선전 영화를 만들게 되고 이것을 제작한 것이 허영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들어갔습니다. 인도네시아인은 허 감독을 매우 잘 압니다. 인도네시아의 국립 시네마 테크에 가면 허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립을 도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허영 감독의 작품.. 2017. 9. 20.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3)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유명 관광지, 휴양지 보다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지의 모습을 기웃거리는 행복한 상상에 빠지려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던 1940년대 초, 일본군이 점령했던 인도차이나 반도 등지로 반강제로 동원됐던 조선인 학도병과 포로감시원들의 사연이 떠오른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인도네시아에 남아 있는 이들의 발자취를 쫓아보기로 결심하고 여기저기 자료를 뒤졌습니다. 그러던 중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인도네시아 내 유적지와 관련된 정보를 접했는데, 허영의 묘지가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허영에 대한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2017. 9. 17.
재일동포 100년의 삶과 꿈(3) 민족 긍지 간직해온 재일동포들의 발자취서울역사박물관 '열도 속의 아리랑' 특별전을 다녀오다 식민지 지배에 놓여 있던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견뎌내야 했던 일본의 차별과 억압, 해방 후에도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연, 조국 분단의 아픔을 타국에서 겪어야 했던 한스러움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습니다. 특히 관동 대지진 당시 '주고엔 고짓센'을 일본인처럼 정확히 발음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재일동포들이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설명 자료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타향살이의 편견과 고단함 속에서도 서울올림픽에 약 1800억원을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고국 사랑을 실천해온 그들의 모습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물리적 거주지는 일본이지만 한민족의 긍지를 간직하고 살아.. 2017.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