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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8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5)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친일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허영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정책인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영화를 제작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허영, 히나츠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실제 허영의 서로 다른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이 1997년 김재범 감독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그 호기심은 결국 쁘땀부란 공동묘지로 필자의 발길을 이끌었다. 2018. 8. 31.
세계 3위 커피 생산대국, 인도네시아(1) 세계 3위 커피 생산대국, 인도네시아국토 전역에서 로부스타 품종 등 연간 65만톤 생산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5년째입니다. 때로는 몇 달 이상 거주하면서, 때로는 한 달에도 두 번씩 서울-자카르타 구간 왕복 항공권을 끊으면서 '적도의 나라'와 친해진 시간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시야가 조금씩 넓어질수록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매력에도 하나 둘씩 눈을 떠 갔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도네시아어로 'kopi(꼬삐)'로 불리는 커피입니다. 바로 인도네시아가 브라질, 베트남에 이은 세계 3대 커피 생산대국이기 때문입니다. 만델링(Mandheling), 토라자(Toraja), 자바(Java) 등으로 대표되는 인도네시아 커피의 유래는 네델란드에서 처음 커피 나무가 이식된 17세기 말로 거슬러 .. 2018. 4. 27.
커피 문화의 천국, 동남아시아(4) 커피 문화의 천국, 동남아시아현지 및 다국적 커피 프랜차이즈 증가 속 소비 시장으로도 각광 둘째 가라면 서러운 동남아 커피의 유래는 17세기 말 인도네시아로 거슬러 올라 간다. 오스만 투르크가 16세기 초 이래 점령하고 있던 예멘에서 몇 그루의 커피 묘목을 빼돌리는데(?) 성공한 네델란드는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주목했다. 그리고 상업적 재배를 목적으로 자바 섬의 바타비아(Batavia, 네델란드 통치 시절의 자카르타 명칭)에 처음 커피 나무를 들여 왔다. 이후 자바 섬 곳곳으로 확산된 커피 재배는 네델란드에 막대한 경제적 부를 안겨 줬다. 네델란드 선원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장기 보관을 위해 찬물로 커피를 내려 마셨던 것이 오늘날 더치 커피의 기원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2017. 10. 24.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6)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허영'(일제강점기의 영화감독, 1908∼1952, 1941년 내선일체를 홍보하는 문예봉 주연의 를 연출,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냄. 일본 육군 및 조선 총독부 후원을 받아 친일영화제작)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조선인 영화감독입니다. 연합군의 포로 학대에 대한 연합군의 비판이 강해지자, 일제 당국은 포로를 잘 대하고 있다는 선전 영화를 만들게 되고 이것을 제작한 것이 허영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들어갔습니다. 인도네시아인은 허 감독을 매우 잘 압니다. 인도네시아의 국립 시네마 테크에 가면 허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립을 도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허영 감독의 작품.. 2017.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