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급부상으로 아시아 맹주 자리를 위협받고 있지만 일본의 저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아시아 최고 국가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일찌감치 선진국 대열에 접어든 일본인지만 아킬레스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 하나로 흔히 영어 구사능력이 꼽힙니다.
학창 시절부터 영어 교육에 투자된 시간 관점에서 보면 한국도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이 경제적 위상 대비 일본의 영어 회화 능력에 낮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의 성인 영어교육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고 작성했던 글을 공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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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한 직장인들의 뜨거운 몸부림 느껴져"
직접 들여다 본 일본 성인 영어교육 현장
얼마 전 한 일본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일본 기업들에 뒤늦은 영어 붐이 일고 있다'는 제목의 뉴스였다. 대형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이 2012년 하반기부터 본사 직원 6,000여명 전원에게 영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고, 최대 캐주얼 의류업체 유니클로도 2012년부터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바꿀 방침이라는 등 소식이었다.
폐쇄적인 경영문화로 유명한(?) 일본 기업들조차 글로벌화의 물결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가 보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 일본 성인 영어 교육 현장에 동참할 기회가 생겼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위상과 반비례하는 영어 후진국 오명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의 현주소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일본 전역을 달군 지난 7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오전. 도쿄 신주쿠구 요츠야역 부근에 위치한 '일미회화학원'. 2층 211호 강의실에서는 '국제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영어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967년 설립된 일미회화학원은 그 역사만큼이나 도쿄 내에서는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을 시키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국적으로 체인점을 가진 대형학원은 아니지만, 입 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작지만 강한' 학원 중 한 곳. 그래서일까. 수업에 참여한 8명 직장인 학생들에게서는 나름 영어에 대한 열의와 자부심이 전해졌다.
기자와 일본인 친구가 청강생으로 교실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가운데 전반부 프리젠테이션 수업이 시작됐다. 이날 발표를 맡은 수강생은 정유회사에 근무하는 쿠끼씨. 쿠끼씨는 정유산업을 다른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산업의 특징, 수익성 등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짜임새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강사가 쥐어 준 녹음 마이크를 든 쿠끼시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침착해진 목소리에는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갔다. 준비한 내용을 잊어버린 듯 가끔 말문이 막히기도 했지만, 발표 막바지에는 "정유산업은 비전이 없으니 정유회사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당부하며 강의실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여유도 보였다.
어느덧 30여분이 지나고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강사,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작정하고 온 까닭인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보통의 일본인들과는 달리 교실 곳곳에서 손이 올라갔다. 특히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면 어떻겠느냐"는 20대 수강생의 질문에서는 글로벌화에 대한 일본 젊은 층의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수강생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정유회사의 미래 및 생존 전략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으로 1시간 반의 청강은 막을 내렸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깨끗한 내부가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건물을 빠져 나왔다.
기자의 친구인 이노쿠치 마리꼬씨는 "과도한 업무와 만만치 않은 비용 부담으로 사설 영어 학원을 찾는 직장인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면서도 "국제화 시대에 영어가 중요하고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승진, 연봉 상승 등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인식은 분명 확산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한 꺼풀 벗겨본 일본의 영어교육 현장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느지막이 기지개를 펼 만한 토요일 오전 직장인 학생들이 뿜어낸 학구열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유명 외국잡지와 전자사전으로 무장한 학생들의 열정은 진작부터 영어 삼매경에 빠져 있는 한국 직장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학생들간의 토론을 장려하기보다는 영어를 사용할 일이 적은 직장인들에게 말할 기회를 제공하는데 급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 안배 등 강사의 수업 진행 역시 매끄럽지 못한 측면이 있었고, 절박함이 부족한 탓인지 지각을 한 젊은 학생들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모습도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여기에 10회 수업에 우리 돈으로 50만원(4만500엔)이 훌쩍 넘는 고가의 수강료를 감당할 수 있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현실적인 물음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영어에 관한 한 2등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의 영어 붐을 최일선에서 목격한 값진 경험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쟁 우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실용 회화 중심의 영어 학습에 더욱 매진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려준 하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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