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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동북아시아

사회적 기업의 숙박사업으로 젊음을 되찾은 코토부키

by junghwan 2017. 3. 11.

언젠가부터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게 들리지 않습니다. 영리 활동을 고용 창출, 사회적 재투자 등과 연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에서 인증 받은 곳만 1,713(2016년 말 기준)에 달할 정도로 양적으로 팽창해 왔습니다

하지만 자립 모델의 부재로 많은 사회적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거나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될 만큼 질적으로는 갈 길이 먼 형편입니다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적 기업의 개념이 일찌감치 등장해 제법 자리를 잡은 일본이 주는 시사점은 남다릅니다

사회적 기업이 탄생한 유럽만큼은 아닐 지라도, 아시아에서는 일본만한 벤치마킹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2012년 봄 우리나라에도 다소 알려진 일본의 사회적 기업 중 한 곳인 '코토랩(Koto-Lab)'을 방문했던 기억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건축학을 전공한 오카베 토모히코라는 젊은이가 설립한 코토랩은 한때 부두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요코하마시의 코토부키라는 죽은 마을을 숙박 사업을 통해 재생시켰습니다. 건물주들을 설득해 마을 건물 일부를 호스텔 빌리지로 개조한 뒤, 2005년부터 운영하면서 젊음 되찾기에 나선 결과입니다

건물주와 호스텔이 수익을 절반씩 나눠 갖는 방식으로 월 평균 1,000여명(숙박 기준) 투숙객을 유치하면서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 모델로 주가를 높였습니다. 덕분에 '축복', '장수'를 의미하는 이름이 무색했던 코토부키는 낡은 빈민촌에서 새로운 관광 명소로까지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일본 출장길에 올랐던 3월의 주말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에 예약을 하고 하루 밤을 묵었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호스텔에서 자 본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스텔이, 그것도 나름 유명하다는 해외의 호스텔이 어떤 곳인지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밤 10시경 도착한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의 첫 인상은 동전의 양면이었습니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아준 직원, 일본 특유의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 등은 좋은 점수를 줄 만 했습니다하지만 잠깐 묵어가는 곳임을 감안해도 비좁은 방, 공동 샤워실과 복도 등에서 나는 왠지 모를 냄새에는 눈살도 찌푸려졌습니다

이 곳의 하루 밤 숙박료는 3000(31,000). 약간의 돈을 더 보태면 샤워실, 화장실이 딸려 있는 비즈니스 호텔에서 좀 더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피곤함 속에 어느 새 눈이 감겼습니다다음날 아침 화창한 날씨에 둘러본 호스텔과 호스텔 주변은 전날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습니다

메모, 사진 등 전 세계 배낭 여행객들의 발자취는 프론트 데스크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영어강좌 등 정기적으로 열리는 강습 안내문이 눈에 띄었고, 매월 한 차례 개최되는 생일파티의 흥겨운 모습도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차이나타운 등 유명 관광지와 미나토미라이 도심과 가까운 주변도 생각보다는 훨씬 정돈된 인상이었습니다마을 인구의 50% 가량이 65세 이상임을 알려주듯 노인층과 일용직 노동자 차림의 행인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치인들조차도 외면했다는 어두운 거리는 아닌 듯 했습니다. 

부족한 관찰이지만, 마을의 안과 밖을 연결해 사람이 오가는 따뜻한 마을을 만들겠다는 코토랩의 실험은 나름 결실을 맺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짧은 시간 동안 아들과 함께 머문 일본 여성, 왠지 모를 사연이 있는 것 같은 중년 일본 남성, 한국 여성 배낭 여행객 및 유럽에서 일본어를 배우러 온 여학생 등 다양한 투숙객들과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카베 대표와 바람직한 사회적 기업 모델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는 길에 프론트 데스크에 살짝 올려놓은 한국산 옥수수차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조그만 마음의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