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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주저리/정치 경제

세월호 참사 1,000일과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by junghwan 2017. 1. 11.

주지하다시피 지난 1월 9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못다 핀 꽃들이 진도 앞바다의 차가운 물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지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 저녁, 서울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TV 화면을 보면서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팽목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조차도 가늠되지 않을 만큼 눈시울이 뜨거워졌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00일은 대부분 국민의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그 날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에는 요원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사의 원인이 속시원하게 규명되지도, 선체가 제대로 인양되지도, 관련자들이 엄정하게 처벌받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식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끔찍한 3년을 보낸 유가족들의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 온 생존 학생들의 심정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저에게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단연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하나로 '세월호 7시간' 행적 등이 명시됐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참사 발생 1,000일 만에 내놓은 박 대통령의 답변은 실망감 그 자체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세월호 참사 당일 평소처럼 기상해 아침식사를 한 후 관저 집무실에 들어갔다"며 "평소 공식 일정이 없을 때와 다름없이 업무를 처리했다"는 등 두루뭉실한 주장만이 전개됐습니다. 오죽했으면 헌법재판소 측에서 "기억을 살려 당일의 행적을 밝힐 것을 요구했었다"며 미흡한 답변서를 보완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을 정도입니다.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지는 서울 중심부의 광화문역 사거리를 지날 때면 세월호 천막이 눈에 들어 옵니다. 2016년 12월 31일 병신년의 마지막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단원고 학생들을 위해 묵념했습니다. 

직무 유기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시간 지연, 물타기 등으로 일관하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박 대통령과 측근들을 하루 빨리 단죄함으로써 유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진 출처: JTBC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