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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10

인도 친구의 아쉬움과 디브러리 스타일(1) 인도 친구의 아쉬움과 디브러리 스타일(Dibrary Style) 2009년 가을 미국 하와이에서 연수를 받을 때 만난 인도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인도의 수도인 델리(Delhi)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지는 붙임성이 좋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저와도 돈독한 친분을 쌓았던 친구가 지난 5월 말 처음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무역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입니다. 몇 년 만에 반가운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는 설레임 때문일까요. 출장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들떠 있었던 저는 한국이 초행길인 친구의 충실한 가이드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친구 역시 .. 2018. 1. 10.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7)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허영은 일본의 패망 직전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들의 목숨을 구해 줍니다. 이를 계기로 전후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리고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 산업의 초석을 쌓는데도 힘을 보탭니다. 물론 국군으로의 뒤늦은 개과천선(?)과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의 칭송이 군국주의 영화를 생산한 친일 전범의 오명을 씻어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허영, 히나츠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2017. 9. 21.
한국에 푹 빠진 인도네시아 청소년들(2) "Kami Cinta Korea Selatan(우리는 한국을 사랑해요)!"한국에 푹 빠진 인도네시아 청소년들 이야기 "Kami Cinta Korea!(우리는 한국을 사랑해요!)"를 자랑스럽게 합창하는 현지 청소년들은 이후에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반둥에서 알게 된 선교사 부부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학생들이 대표적입니다. 무슬림 신자가 전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에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한 이들 부부는 한글, 한국 음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데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매주 한 번 이상 한국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교사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은 원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한국 요리 삼매경에 빠지고, 한국 노래도 같이 부르.. 2017. 9. 12.
한국에 푹 빠진 인도네시아 청소년들(1) "Kami Cinta Korea Selatan(우리는 한국을 사랑해요)!"한국에 푹 빠진 인도네시아 청소년들 이야기 2013년 12월 중순 인도네시아로 막 건너 왔을 때의 일입니다. 근무를 하게 된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Bandung)에서 보내는 첫 주말이었습니다. 길잡이를 자처한 현지인 친구의 차를 타고 한 대학 캠퍼스 정문 앞을 지나갈 때 저도 모르게 '스톱(stop)'을 외쳤습니다. 현지 대학 이름을 한글로 적은 현수막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들어간 교정 한 쪽에서는 '한국 페스티벌(Korean Festival)'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10대 중 후반~20대 초반의 학생들이 한국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흥겹게 한국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춤도 췄습니다.마침 .. 2017.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