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여행/동남아시아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7)

by junghwan 2017. 9. 21.

독립 인도네시아 꿈꾼 한국인 영화 감독

자카르타 쁘땀부란 공동 묘지 내 허영 무덤을 찾아서


허영은 일본의 패망 직전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들의 목숨을 구해 줍니다. 이를 계기로 전후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리고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 산업의 초석을 쌓는데도 힘을 보탭니다. 

물론 국군으로의 뒤늦은 개과천선(?)과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의 칭송이 군국주의 영화를 생산한 친일 전범의 오명을 씻어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허영, 히나츠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계속 커졌습니다. (실제 허영의 서로 다른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이 1997년 김재범 감독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결국 공동 묘지로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쁘땀부란 묘지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허영에 관한 단어는 바로 '감독(direktur)'이었습니다. 선한 인상의 묘지 관리인은 "허영이 영화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친구를 통해 물어왔습니다. 독립 영웅으로 대접받는 허영의 묘지를 찾는 방문객들이 종종 있는 덕분인지,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출입구를 지나 허영이 묻힌 장소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이들이 묘지 옆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다소 생소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2~3분쯤 걸었을까요. 마침내 'DR.HUYUNG' 이름이 새겨진 허영의 무덤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