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조선 총독부 등의 후원으로 친일 영화를 만들던 허영은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직전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들의 목숨을 구해 줬다. 이를 계기로 전후 일본식 이름인 히나츠 에이타로(日夏英太郞)를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
이후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 등을 제작하며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초석을 쌓는데도 힘을 보탰다. 물론 뒤늦은 개과천선(?)과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의 칭송이 군국주의 영화를 생산한 친일 전범의 오명을 씻어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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